
마태복음 5장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시작되는 장인데, 33장부터 37장에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이는 악으로부터 나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우리가 맹세한다는 것은 약속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말하는 것인데 왜 맹세를 악이라고 하셨을까. 우리는 앞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인 이상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하며 그것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순종의 자세가 아닐까. 남과 약속을 할 때는 그냥 내가 최선을 다해 약속을 지키겠노라고 말하면 될텐데 하나님을 거론하면서 맹세하는 사람들이 있다. 약속을 지킴에 있어 하나님의 이름을 내 걸 자격이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또 하나의 죄를 짓는 것이다. 사기꾼의 명백한 표적은 바로 하나님..
크리스찬에게 '용서'는 크나큰 도전과제의 하나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자신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22절에서 '일곱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나를 괴롭히는 자가 수없이 해코지를 계속하더라도 나는 끊임없이 용서만 해 줘야 된다는 건가요? 뉴스에 보면 성폭행을 당한 어린 여성들이 범인의 집요한 괴롭힘 끝에 차라리 세상을 등지고 마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피해 여성들은 관대하게 범죄자를 용서해 주고 쿨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했는데 오히려 피해여성들이 성경 말씀을 어긴셈이 되는건가요. 공의와 사랑의 예수님이 그렇게 바보같은 뜻으로 말씀하시진 않았겠죠. 그렇다면, 일곱번을 일흔번, 즉 거의 무한대로 용서해 주라는..

아무리 총명하고 용맹한 사람이라도 정말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얼마나 급 나약해 질 수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약함을 잘 이해하시고 얼마나 살뜰한 마음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지요. 열왕기상 19장의 엘리야 이야기는 우리가 어느순간 삶의 의욕을 잃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맥없이 주저앉아 있을 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게 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불의 대결을 승리하고 바알 선지자 450명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리는 기염을 토했으나 아합왕의 왕비이며 바알 숭배자인 이세벨이 복수의 칼날을 들고 그를 잡아 죽이려 하자, 산으로 들로 도망칩니다.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엘리야는 로뎀나무 밑에 앉아서 "하나님,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지금 내 생명을 거두소서"하..

승승장구하던 다윗왕은 밧세바와의 불륜과 그 남편을 죽게 하는 큰 죄를 짓고 난 이후 엄청 고통스런 사건들을 연속 경험하게 됩니다. 밧세바의 아기가 죽는 일로 시작하여 자식들간에 근친상간과 살인이 자행되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반란으로 왕위까지 빼앗기고 외지로 피난가는 등 일련의 고통을 겪습니다. 다윗왕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지만, 그중 성경에서 비중있게 거론되는 것은 암논, 압살롬, 아도니야, 솔로몬 등 네 명입니다. 이들 부자 및 형제 사이에는 요즘의 막장 드라마를 뺨치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하기엔 심히 부끄러운 짓들이 자행되었습니다. 장남으로서 후계자 1순위였던 암논은 압살롬의 여동생 즉, 이복동생을 겁탈하는 죄를 저질렀으며, 압살롬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형 암논을 살..

'돌아온 탕자'를 환영해 주는 아버지의 이야기 바로 뒤에는 아버지에게 불평하는 탕자의 형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돌아온 탕자를 위하여 잔치를 열고 모든 집안 사람들이 즐거워하는데 오직 탕자의 형만은 불만에 가득차 아버지에게 항의합니다. "나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한치의 어김이 없었는데 내게는 염소 새끼 한마리도 안주시더니 창기와 놀아나느라 재산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에게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십니까?" 누가 들어도 탕자 형의 불만은 타당하다고 여길겁니다. 복을 받고 상을 받을 사람은 형이어야 하는데 동생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억울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0장 1~16절의 포도원 주인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하루 1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일꾼들에게 일을 시키..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언뜻 천국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탕자는 원래 집안에 아무런 기여도 없이 아버지 재산을 한 몫 뜯어내 세상에 나가 완전 허랑방탕하게 뒹굴다가 돈 떨어지고 굶어 죽게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아주 파렴치한 놈입니다. 세상적으로 이런 아들을 쉽게 용서해 줄 수 있는 아버지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탕자의 아버지는 다릅니다. 한마디의 책망도 안할 뿐 아니라 제일 좋은 옷과 신발을 입히고 손에는 아들의 증표가 되는 가락지를 끼워줍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엽니다. 천국의 아버지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탕자가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한테 용서받을 만큼 무슨 대단히 착한 일이라도 한 것일까요. 혹시나 해서 탕자가 집..

요즘 정치판을 보면 오늘의 성경구절 사무엘하 12장 1~7절이 생각납니다. 사람이 많이 가지게 되면 양심이 무뎌집니다. 니것 내것 없이 전부 자기 것처럼 생각하고 무소불위, 그야말로 맘만 먹으면 뭐든지 못할게 없다는 오만함에 푹 빠져서는 누가 뭐래도 자기 잘못은 1도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다윗은 많은 고난과 전쟁을 이겨내고 마침내 역사상 최강의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해 남부러울 것 없는 부와 권력을 거머쥐면서 변하기 시작합니다. 부하 장수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걸 훔쳐보고는 그녀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더 나쁜 것은 자기 죄를 덮기 위하여 그녀의 남편을 전쟁터에 선봉장으로 내보내 죽게 만들어 버린 것이고, 더욱 더 나 쁜 것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한 줄도 모..

어제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힘이 압승을 했습니다. 출구조사 발표 때 보니까 국민의힘 사람들은 팔짝팔짝 뛰고 서로 손바닥을 부딪히고 껴안고 하면서 한바탕 축제를 벌였습니다. 얼마나 기쁘면 저럴까 생각하니 보는 사람도 웃음이 나오더군요. 무지 무지 기쁜 일을 겪게 되었을 때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몸을 격하게 움직여서 기쁨을 표현하는게 일반적이죠. 동서고금에서 자신의 기쁨을 가장 격렬한 몸놀림으로 표현한 사람이 바로 다윗왕입니다. 다윗은 사울왕이 죽은 후 전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드디어 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는 만사를 제쳐놓고,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찾아 오기로 합니다. 그동안 사울왕이 내 팽개쳐 두었던 언약궤를 성안으로 모셔오는 일..

다윗이 장성하면서 많은 전쟁에 출전해 빛나는 무공을 세우니, 여인네들이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노래한다. 이에 사울왕은 다윗을 시기하여 "그가 더 얻을 것은 왕의 자리 밖에 없지 않은가"라면서 다윗 죽이기를 시작한다. 어느 역사에서나 지도자가 아랫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면 그는 스스로 망하게 되어 있다. 사울의 패악이 점점 심해지자, 하나님의 영은 그를 떠났고, 다윗을 다음 지도자로 예비하신다. 암튼 사울왕은 틈만 나면 계교를 써서 다윗을 죽이고자 하니, 늘상 산과 들로 도망다니면서 곤고하게 지내던 다윗은 그의 지치고 억울한 심정을 시편 142장에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라고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내 영혼을 옥에서 ..

누구나 성경 이야기 중 가장 신나는 장면을 얘기하라고 한다면 바로 어린 다윗이 거인 골리앗과 싸워 이기는 대목을 꼽을겁니다. 요즘 우리가 열광적으로 좋아하는액션영화들도 평범한 주인공이 엄청나게 악하고 강력한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죠. 주인공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불리한 상황에 있을수록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와집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그의 나이는 과연 몇 살이었을까요. 그의 체격은 또 어땠을까요? 성경에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정황상 그가 미성년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민수기에 이스라엘의 징집연령은 20세로 되어있습니다. 근데, 다윗이 출전을 허락해 달라고 사울왕에게 요청했을 때, 사울왕은 "너는 단지 소년이 아니냐? 역전의 용사인 골리앗과 싸우는건 불가능하다"면서 불허합니다. ..

우리는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가끔 우리 부모는 왜 나를 낳아서 이런 괴로움을 겪게 할까 하고 원망하는 적이 있습니다. 왜 나의 부모님은 많은 빚이나 동생들을 내게 남겨두고 일찍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생고생을 하게 할까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죠. 나의 잘못과는 전혀 상관없이 벼락 떨어지듯 펼쳐진 지옥같은 환경 속에 내던져질 때 부모와 하나님께 원망을 돌리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럴때 위로가 되는 말씀이 바로 성경의 토기장이의 비유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갖가지 용도와 모양으로 빚으신 토기라고 생각한다면,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한다면 모든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고 나아가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나는 '귀히 쓸 그릇' 일까 '천히 쓸 그릇'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단 한개씩의 목숨을 받았으며 종국에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하나님께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평등의 과실은 당연한 특권처럼 누리지만 정작 그것을 반납할 때는 한없이 인색해지고 두려워 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목숨을 자진 반납해야 할 '때'를 깨닫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연한 각오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 과감히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늘 존재했으며 이들이야말로 인류 역사의 발전과 행복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죽음 앞에서 아무 갈등도 없었을까? 그들이라고 왜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다만, 그들은 늘 가슴에 품어온 그 무엇인가의 높은 가치관이 시키는대로 짧은 순간..

지난 회에서는 고린도전서 13장 4~8절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실체를 16가지의 키워드로 요약해 살펴 봤는데요 그에 앞서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통해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엄청나게 쎈 강도로 강조해 놓으셨습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과 내몸을 불사르게 내주는 헌신이 있더라도 사랑이 빠져 있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에 사랑의 16가지 키워드를 대입해 보면, 오래 참지 않고, 온유하지 않고, 시기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무례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성내며, 악한 것을 생각하며, 불의를 기뻐하며, 진리를 기뻐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참지 않으며, 모든 것을 믿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견디지 아니하고, 늘 붙어 있지 ..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는 간단한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그냥 늘상 흘려 읽고 지나가는 구절이지만, 사실 이 한마디 말씀에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라 해도 사실 이 첫 구절을 전적으로 믿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면서 자랐기 때문에 과학적 논리와 상충되는 이 구절을 먼 옛날의 신화적인 기록일 뿐이라고 치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이 믿어지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갑자기 믿어지는 기적 한가지만 일어난다면 나머지 기적들은 그냥 덤이 되고 맙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믿어지는 사람은 이미 기적을 체험한 셈입니다. 천지창조의 기적이 믿어지면 그 다..

성경 속의 '갈렙'(Caleb)이란 인물은 용기와 도전의 상징입니다. 그는 '야곱'의 자손이 아닌 '에서'의 자손으로 태어나 유대인들이 깔보는 소위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으로 뒤늦게 유다지파에 편입된 귀화인 신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의 온전함은 모세나 여호수아, 다윗에 뒤지지 않았으며 특히 용기와 도전정신 면에서는 아마도 구약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위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나안을 거의 평정한 후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각 지파마다 좋은 땅을 배정받기 위해 침을 흘릴 때 갈렙은 거인족 아낙 자손 게릴라가 진치고 있는 험준한 산지를 가리키면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합니다. 모두들 "바보 아냐?"하고 쳐다 보았을 법 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가 85세였다고 하니, 아무리 그의 ..

성경의 바벨론(영어로 Babylonia, 스페인어로 Babilonia)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번성했던 고대왕국으로 패역한 이스라엘 왕조를 멸망시키고 많은 포로를 잡아 간 나라인데, 우리가 어릴 때 배운 함무라비 법전을 만든 함무라비가 바로 바벨론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정복한 느부갓네살 왕(BC605~562)은 포로만 잡아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성전의 기물까지 모조리 탈취해 바벨론의 신전을 장식해 놓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은 우상숭배와 음행 등 하나님에 대한 적대세력의 상징으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강성한 바벨론의 압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

구약의 역대상하는 영어로 Chronicles, 스페인어로 Crónicas 즉, 시간순서대로 인류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인류의 조상 아담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 다윗을 거쳐 여러 왕들에 이르는 긴 족보로 시작되는데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패턴이 계속되다가 뜬금없이 야베스란 이름이 등장하면서 그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그의 기도문이 소개되고 있다. *** (역대상 4장 9~10절)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

해마다 금년에 성경을 한번 통독하라라 큰 맘 먹고 마태복음 1장 1절을 펴드는 순간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예수님 족보를 읽다 보면 갑자기 졸음이 밀려와서 통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여러번 잠들었던 사람들은 아예 1절부터 17절까지는 건너뛰고 18절부터 읽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예수님 계보를 마태복음 처음에 장황하게 기록한 하나님의 숨겨진 뜻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성경에는 예수님 족보가 마태복음 1장 뿐 아니라 누가복음 3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언뜻봐도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다윗왕을 거쳐 예수님까지 42대가 기록된 반면 누가복음에선 아담에서 예수님까지의 75대를 기록하고 있는데 ..
가나안 땅을 탈환한 이스라엘은 선지자가 다스리는 500년간의 사사시대를 거쳐, 사울이라는 인물을 초대 왕으로 하는 왕조시대를 맞습니다. 사울에서 다윗, 솔로몬의 3대 왕이 다스리는 75년간의 통일국가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융성한 시기였지만, 인간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탐욕과 갈등, 그리고 승리와 좌절이 그려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몇편에 걸쳐 다윗의 영욕을 중심으로 스페인어를 배워 봅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숙적인 블레셋 진영의 골리앗이라는 키 3미터에 달하는 거인 장수가 이스라엘 군대를 겁박하고 조롱하는 장면을 살펴 봅니다. 골리앗으로부터 "나를 못 이기면 이스라엘 전체가 블레셋의 종이 되라"는 개무시를 당하면서도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싸여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

광야의 시험을 거친 예수님이 사역을 준비하시기 위해 3명의 제자를 거두셨을 때,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습니다. 어머니가 혼례식장에 먼저 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어머니 쪽의 가까운 친척이 결혼하는 자리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의 혼례식은 보통 7일간을 먹고 마시며 치러진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혼례식 후반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고, 예수님에게 알립니다. 예수님은 아직 본격 사역에 나설 때가 아니므로 겉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셨지만, 어머니는 예수님이 무언가 행하실 것으로 믿은 것 같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실지 전혀 몰랐지만, 하인들에게 무조건 그의 말씀을 따르도록 당부합니다. 예수님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 갖다주라고 하니, 가는 사이에 물이 포도주로 ..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40년간 광야를 떠도는 고난을 겪게 되지만,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정신과 몸을 훈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숨겨진 안배라고도 생각됩니다. 암튼, 모세가 나이들어 죽고 그를 이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여호수아는 모세의 기적에 준하는 요단강 도하에 성공하고 가나안 땅의 성읍들을 하나하나 정벌해 나가지만, 막상 여리고 성문 앞에 도착해서는 대략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여리고성은 높은 구릉위에 외벽과 내벽 등 두겹으로 건축된 난공불락의 성벽이었다고 합니다. 외벽은 5m 정도 높이의 기초 성벽 위에 두께 2m, 높이 7m의 진흙벽돌 벽으로 세워졌고, 내벽은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14m 정도 되는 둑 위에 다시 높이 솟아오른 내성..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 초입에서 사분오열합니다. 고향 땅 수복을 위한 진격에 앞서 12명의 수령급 지도자를 보내 사전정찰을 시켰더니 10명이 입을 모아 "적은 너무 강대하여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면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온 백성들이 "여호와는 왜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죽게하는가. 차리리 애굽으로 돌아가는게 낫겠다"면서 모세를 원망합니다. 다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하면서 하나님 언약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이일로 하나님은 패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40년동안 광야에 떠돌게 하시고, 한 세대가 모두 죽은 후 오직 여호수와와 갈렙, 그리고 ..
창세기 12장 1-2절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는 장면입니다. 아브람(큰 아버지)이란 이름이 아직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으로 바뀌기 전,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은 우상의 땅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는 곳으로 무조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거함으로써 하나님께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선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성경에선 You will be a blessing. 스페인어 성경에선 serás bendición, 즉 "너는 복이 될 것이다"로 번역되어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복'은 복 자체, 복의 원천이란 뜻이 되겠지요. 스스로 복되지 않고서는 ..
스페인어 성경공부의 첫 주제는 마태복음 1장 18절,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Matthew 1:18) Now the birth of Jesus Christ was in this way: when his mother Mary was going to be married to Joseph, before they came together the discovery was made that she was with child by the Holy Spirit. (Mateo 1:18) Y el nacimiento de Jesucristo fué así: Que si..